빛바랜 BK21 20주년, 사업단장 70명 '가짜학회' 이용자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 교육계의 오랜 격언이다. 고등교육 현장, 대학을 들여다보더라도 두말할 나위 없다. 미래 공동체를 이끌 신진 연구자들을 길러내는 곳. 교수들이 후학들을 잘 이끌어주길 바라는 건 결코 무리한 기대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기꺼이 기대를 걸고, 오랜 기간 세금을 지원해왔다. 정부 예산으로 연간 사업비 2700억 원을 투입하는 두뇌한국21(BK21) 사업 이야기다.

BK21 출범 20주년…‘가짜학회 참가’ 사태로 오점

BK21 사업은 IMF 이후 어려웠던 지난 1999년 1단계를 시작해서 2006년 2단계 사업을 거쳐 2013년부터 현재 플러스 단계(3단계, BK21플러스)까지 20년 세월을 정말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지난 6월 28일 BK21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BK21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년간 5만 명 넘는 대학원생들이 BK21 사업비를 받아 석·박사의 꿈을 이뤘다. BK21은 점점 몸집을 키웠다. 1단계 사업(1999~2005년)이 돛을 올릴 때만해도 지원을 받은 대학원생은 1만2000여 명이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3단계 ‘BK21 플러스’ 사업 수혜를 받는 대학원생은 3만 명이 넘는다. 참여교수 역시 1단계 사업 때는 3000여 명이었지만, 현재는 두 배가 넘는 7000여 명이 연구비를 받고 있다. 양적 성장은 성공했다는 자평이 나오는 이유다.

양적 성장과 대규모 연구비 지원에는 그늘도 있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BK21 사업 20주년 심포지엄 기조강연에서 “(BK21 사업에서 대학원생 해외 학회 참가비를) 지원해주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도 많고, 신문에 나는 불미스러운 사태도 있었다”면서도 “대학원생들이 적어도 외국에 나가서 논문 발표하는 데 있어서 주눅 들지 않는 정도의 기회는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총장은 2013~2016년 BK21플러스 총괄관리위원장을 지냈다.

그가 말한 ‘신문에 나는 불미스러운 사태’는 해외 견문을 넓힐 기회를 줬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흠집이 아니다. BK21 등 국가연구비를 지원받는 학자들의 ‘가짜학회’ 참가 사태로 지난 1년간 우리 학계는 뒤숭숭했다. 정부는 관련자들을 징계하고, 연구비 환수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뉴스타파와 독일공영방송 NDR 등 국제협업 취재팀은 지난해부터 여러 사이비 해외 학술대회에서 한국 대학원생, 교수들을 목격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와셋(WASET) 학술대회에 온 한 대학원생은 BK21 연구비를 쓰기 위해 참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저와 동료 대학원생들은 (2018년) 2월까지 (학술대회 참가) 날짜를 정해야 했다”며 “2월까지 받아야 할 연구비가 있는데 그 돈을 소진해야만 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BK21플러스 연구비를 받는 대학 사업단들이 가짜 학술단체가 운영하는 학술대회에 무더기로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 8월 뉴스타파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동시에 이런 사이비 학회 활동을 BK21 사업 실적으로 등재하는 관행도 드러났다.

BK21 사업단 81곳 와셋·오믹스 실적…사업단장 70여 명 연루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BK21 사업단을 더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을까. 뉴스타파는 다시 한 번 BK21과 가짜학회의 관계를 점검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자체 파악해 국회 교육위원회 조승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대학별 BK21플러스 사업단(팀) 81곳이 양대 사이비 학술단체, 와셋과 오믹스(OMICS)에서 활동한 이력을 BK21 실적으로 교육당국에 보고했다. 지난해까지 연구비를 지원받은 사업단 542곳 가운데 15%에 이른다.

뉴스타파 취재팀은 교육부과 집계한 자료와 별도로 2019년도 사업비를 받은 전국 BK21 사업단 525곳의 사업단장의 이력을 전수 조사했다. BK21 연구비로 교수, 대학원생들이 가짜학술대회에 드나든 이유 중 하나는 사업단의 학술활동과 행정을 총괄하는 사업단장의 역할이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우선 사업단장을 맡은 교수들의 명단을 BK21 공식 웹사이트와 교육부·연구재단의 사업계획안에서 확인했다. 이렇게 파악한 525명의 이름과 소속을 와셋, 오믹스의 웹사이트에 공개된 발표자료집·논문에 적힌 저자명과 교차 확인했다.

뉴스타파 분석 결과, 대학별 사업단장 525명 가운데 1회 이상 와셋과 오믹스의 발표자료, 논문의 저자로 등장한 교수는 확인된 것만 모두 72명(약 14%)이었다. 2회 이상 와셋과 오믹스에 이름 올린 단장은 44명, 3번 이상 검색되는 경우는 26명에 이르렀다.

와셋, 오믹스의 발표자료 또는 논문에 무려 10회 이상 저자로 등장하는 단장도 3명 확인됐다. 이들은 각각 세종대 미래IoT사업팀장(와셋 47회), 성균관대 ICT융합시설물통합관리 창의인재양성사업팀장(와셋 15회), 영남대 차세대 스마트메카트로닉스 시스템 개발팀장(와셋 11회)을 맡고 있다.

정부도 BK21 참가 연구자들의 가짜학회 참가 실태를 점검하긴 했지만, 이제껏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해 뉴스타파가 가짜학회 연속 보도를 내놓은 뒤부터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도 곧장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연구재단의 BK21 사업총괄위원회는 같은 해 7월 말 ‘학술단체 와셋 등 언론보도 관련 조치 계획안’을 심의했다. 이때는 BK21 사업단의 성과를 점검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성과 점검과 동시에 사업 규정을 위반하거나 부정·비리를 저지른 사업단을 제재할 계획도 심의한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올해 1월 작성한 ‘2019년도 BK21플러스 사업 운영·관리 계획안’을 보면 가짜학회 이력이 불거진 사업단의 지도교수 제재나 해외학회 참가비 규제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원생의 부실학회 참여를 예방하기 위한 온라인 교육을 의무화하겠다’는 한 줄짜리 방안이 확인될 뿐이다.

교육부는 2019년도 사업계획안에서 BK21 사업단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무분별한 국제 학술활동을 가능케 하는 ‘고무줄 예산’은 규제해야 한다. 현행 BK21 사업비 편성 기준에 따르면 전체 사업비에서 대학원생 지원비(연구장학금)는 40~60%, 사업단 운영비는 10% 이내로 예산 편성 범위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화 경비’ 항목은 예산 편성 비율을 제한하지 않는다. 각 BK21 사업단은 1인당 많게는 수백 만원씩 지원하는 해외 학술대회 참가비를 국제화 경비 항목에서 조달한다. 사업단의 국제학술대회 참가 관행과 연구 윤리 정도, 교수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예산을 낭비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세종대 미래IoT사업팀의 경우, 간단한 웹검색만으로도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와셋 학술대회에서 40회 이상 발표한 이력이 확인되는 실정이다.

당국 “부실학회 참가 단장, 배제 규정 없다”…제도 개선 약속만 되풀이

뉴스타파 취재팀은 지난달 BK21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현장에서 유은혜 교육부 장관과 노정혜 연구재단 이사장을 직접 만나 BK21 사업단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취재팀은 정확한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교육부와 연구재단에 질의서를 보냈고, 서면답변서를 받았다. 이 답변서는 연구재단이 초안을 작성한 뒤 교육부가 수정·검토한 것이다. 따라서 취재팀이 받은 답변서는 연구재단뿐 아니라 교육부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교육부와 연구재단 모두 대면 인터뷰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

먼저, 취재팀은 가짜학회 참여 실적이 확인되는 교수들 가운데 상당수가 올해도 여전히 BK21 사업단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교육부와 연구재단은 “BK21 사업에서 부실학회에 참석한 사업단장을 배제할 수 있는 규정적인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BK21 사업 관리 운영에 관한 교육부 훈령’은 문제가 된 사업단장을 엄격하게 제재하는 조항을 갖추고 있다. 훈령 제24조2 1항에 따르면 BK21 사업단으로 선정된 이후 사업단장이 연구윤리나 BK21 협약을 위반한 경우 사업단장을 교체하고, 사업비를 삭감해야 한다. ‘제재 규정이 없다’는 당국의 해명은 불충분하다.

교육당국은 또 한 번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교육부와 연구재단은 “향후 BK21 사업단에서 부실 학술활동 예방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마련하도록 하고, 국제학술대회 발표 및 참여에 대한 내용을 사업단 자체 운영 규정에 포함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국제화 경비 집행 시 각 사업단에서 학회의 질적 기준을 사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절차를 보완하겠다”고 했다.

제도를 손질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개선된 BK21 제도를 운영할 사업단 책임자의 자질을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뉴스타파가 지난 1년간 가짜학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학 행정 담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상 행정적인 차원에서 믿어야 됩니다, 사업단장을.

경북대학교 산학협력단 관계자

사업단장 개개인의 판단에 따르는 수밖에 없고….

성균관대 홍보팀 관계자

사업하는 교수님들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상황인데….

세종대 산학협력단 관계자

20주년을 맞은 BK21 사업은 기로에 서 있다. 2020년 9월 4단계 사업이 출범한다. 2027년까지 2조 원 규모의 세금을 투입한다. 7년간 대학원생 1만8000명이 연구비를 지원받을 예정이다. 교육부는 이들을 “국가를 선도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석박사급 인재로 양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밝혔다. 그러려면 적어도 사이비 학술 활동의 유혹에 빠지는 스승을 만나게 해서는 안된다.

다음 단계의 BK21 사업은… 대학원 교육과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금으로 우리를 지원해주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의 희망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지난 6월 28일 BK21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취재: 홍우람 김지윤
촬영: 최형석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Source: Newstapa_total_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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